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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정황도 밝혀내지 못한 '불산' 유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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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3일(일) 13시 14분

   

관리자  news@kofst.or.kr

   

지난 9월 27일 구미 공단에서 발생한 사고는 물론이고, 사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총체적인 부실이었다. 한 달이 지났지만 정부는 사고의 정확한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언론도 문제의 핵심을 지적해주지 못했다. 인터넷과 언론에는 아직도 기막힌 괴담수준의 엉터리 정보로 채워져 있고,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는 형편이다.

   

유출된 물질은 '불산'이 아니었다

이번 사고로 유출된 물질은 '불산'이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탱크로리에 실려있던 물질은 분자식이 HF로 표시되는 '플루오린화수소'(불화수소)였다. 플루오린화수소는 정상 끓는점이 19.5도로 휘발성이 강한 액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약 산업에서 대량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화수소는 형석(螢石, fluorite)을 진한 황산에 넣고 고온(섭씨 265도)으로 가열해서 생산한다. 인회석에서 인산비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얻어지기도 한다. 언론에서 들먹이는 '불산'(플루오르산)은 플루오린화수소를 물에 녹인 수용액으로 폭발하거나 가스 상태로 유출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30~50% 농도의 불산 수용액은 금속을 심하게 부식시키기 때문에 금속으로 만든 탱크로리로 운반할 수 없다. 또한 불산은 유리를 녹여버리기 때문에 플라스틱 병에 보관해야만 한다. 플루오린화수소는 생물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낸다. 플루오린화수소가 물에 녹으면 화학적으로 약한 산()의 성질을 갖게 된다.농도가 진한 산은 피부를 자극한다. 플루오르산의 경우에도 호흡기 점막과 눈에 염증을 일으킨다. 플루오르산이 생물의 조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조직 속으로 침투한 플루오르산이 이온화되어 만들어진 플루오린 이온이 세포 속에서 신호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칼슘 이온과 단단하게 결합하여 플루오린화칼슘으로 안정화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식물의 경우에는 광합성이 불가능하게 되어 잎이 말라버리고, 동물의 경우에는 조직이 썩거나, 뼈가 녹아버리거나,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경우도 생긴다.

   

어처구니없었던 사고 정황

탱크로리에서 흰색 가스가 10여 미터 높이까지 솟아오르는 장면은 최소한의 화학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당초에 알려졌듯이 탱크로리에 실려있던 물질이 수용액 상태의 플루오르산이었다면 그런 상황은 벌어질 수가 없다. 실제로 탱크로리에 실려있던 순수한 플루오린화수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플루오린화수소의 끓는점을 고려하면 당시 탱크로리 안의 압력은 외부의 대기압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업자 실수로 배출 밸브를 완전히 열었다고 하더라도 소량의 가스가 새어나올 수는 있겠지만 사고 현장에서처럼 가스가 폭발적으로 솟아오를 수는 없다.

맹독성의 플루오린화수소 액체를 운반하는 탱크로리의 구조는 특별하다. 사고나 실수로 플루오린화수소 액체가 새어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배출구를 탱크로리의 위쪽에 설치한다. 그 대신 탱크로리에서 플루오린화수소를 빼내는 과정은 복잡해진다. 일반적인 탱크로리와 달리 중력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3~5기압의 압축공기를 사용해서 탱크 속의 액체를 밀어내는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구미 사고는 작업자가 실수로 플루오린화수소를 저장 탱크로 연결해주는 파이프를 연결하기 전에 압축공기를 먼저 주입했던 것이 분명하다. 탱크로리 속에 실려 있던 플루오린화수소 액체가 압축공기에 의해 배출구를 통해 밀려 나가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플루오린화수소는 6개의 분자가 고리 모양으로 들러붙은 (HF)6의 무거운 에어러졸 형태로 분출되었을 것이다. 높이 솟아올랐던 가스가 다시 지표면으로 낮게 깔리면서 마을의 주민, 가축, 식물에 피해를 입혔다.

   

사후처리에 대한 혼란

소석회(플루오린화칼슘)는 수용액 상태의 플루오르산(불산)이 유출되었을 경우에 사용하는 제독제다. 소석회의 칼슘 이온이 수용액 상태에서 플루오린 이온과 결합하여 화학적으로 안정한 플루오린화칼슘으로 변화되고 나면 더 이상의 피해는 발생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이번처럼 대기 중으로 플루오린화수소가 가스(에어러졸) 상태로 유출된 경우에는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다. 가스가 넓은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플루오린화수소 가스에 가루 상태의 소석회를 뿌리는 것으로는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처음부터 소석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정치권과 언론의 비난은 목숨을 걸고 사고 처리에 나섰던 소방대원들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출동한 소방대원이 물을 뿌린 것에 대한 평가도 혼란스럽다. 유출된 화학물질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소방대원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기 중으로 확산된 에어러졸의 일부가 소방대원이 뿌린 물에 녹아서 땅으로 떨어졌겠지만 전체적으로 큰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흘러내린 물이 낙동강으로 직접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했다는 정부 당국의 자랑도 큰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유출된 플루오린화수소가 물에 녹아서 부식성이 더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플루오린화수소가 유출된 탱크로리에 직접 물을 뿌리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플루오린화수소가 휘발성이 크다는 점과 칼슘이나 규산(실리케이트)과 쉽게 반응하여 안정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가스 상태로 유출된 플루오린화수소 에어러졸 중 일부가 땅, 건물, 식물의 표면에 내려앉았던 것은 분명하다. 농작물과 식물이 말라죽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농작물에 플루오린이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다. 세포막 때문에 다시 기체 상태로 배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면에 흡착되었던 플루오린화수소는 해가 뜨고 나면 곧바로 기화해서 공기 중으로 확산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황당한 사후 대책

플루오린화수소가 사람, 가축, 농작물에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플루오린화수소가 칼슘, 마그네슘, 금속과 반응해서 화학적으로 쉽게 안정화 된다는 것도 명백한 과학적 진실이다. 가스 상태로 유출된 플루오린화수소가 환경에 남아서 지속적으로 피해를 줄 가능성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번처럼 한꺼번에 많은 양이 가스 상태로 유출된 경우와 작업장이나 환경적 특성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상황은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대부분의 환경이나 보건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플루오린화수소의 독성 자료는 이번 사고의 경우와는 사정이 전혀 다른 지속적 노출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농작물을 포함한 식물의 잎이 누렇게 말라죽기 시작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였으나 농작물이 누렇게 말라죽은 장면은 이틀이 지난 29일부터 일부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다만 추석 명절 분위기에 젖었던 우리 사회가 10월 5일 까지 구미의 사고 현장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뿐이다. 언론과 정부가 일주일 이상 지난 후에 피해 상황을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이다. 언론이 뒤늦게 사고 현장에서 주목한 피해 상황을 '2차 피해'라고 부르면서 호들갑을 떨었던 것은 자신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실을 감추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농산물이 플루오린에 오염된 것은 사실이다. 조직 속에 스며든 플루오린이 남아있는 농산물은 폐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차피 상품성을 인정받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나무와 가축은 사정이 다르다. 멀쩡하게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사고 지역의 잔디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잔디의 잎은 말라버렸지만 뿌리는 살아있다는 뜻이다. 나무와 가축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1천 마리도 되지 않는 피해 지역의 소가 전국의 축산물 시장을 교란시킬 것이라는 정부의 걱정은 과장된 것이다. 베어낸 나무가 되살아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멀쩡하게 살아있는 가축과 나무를 폐기함으로써 더 큰 진짜'2차 피해'를 유발시키는 어리석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구멍 뚫린 유해물질 관리체제

   

이번 사고는 우리 정부의 유해물질 관리 제도의 어설픈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 정부는 한 달이 지나도록 사고의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평소에 유해물질의 유통이나 취급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고의 정황도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플루오린화수소와 플루오르산의 차이를 알고 있는 관료도 없었고,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능력도 없었다.

압축가스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지경부, 유해물질의 관리를 담당하는 환경부,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자들을 관리하는 노동부가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서로가 다른 정부 조직에 책임을 떠넘기기에 골몰하는 것이 우리 관료들의 고질적인 병폐다. 결국 국무총리실이 나서서 정리를 해줘야만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현실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정부에도 보험회사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구상권'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유해물질의 관리를 위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환경과 보건 분야의 전문가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화학물질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화학 분야의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모든 화학물질을 '유해물질'로 규정할 수는 없다.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적극적인 투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피해 주민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충분하지 못했다. 주민들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고를 일으킨 기업이 능력이 없다면 정부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서다.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책임감을 가지고 주민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책임이다. 무작정 안심하고, 피해를 감수하라는 정부의 주장은 민주화 시대의 책임있는 정부의 주장일 수가 없다

   

   

   

글_ 이덕환 대한화학회 회장 duckhwan@sogang.ac.kr

글쓴이는 서울대학교 화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코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

교 화학과 교수로 과학커뮤니케이션협동과정 주임교수 등을 맡고 있다.

   

출처: <http://online.kofst.or.kr/Board/?acts=BoardView&bbid=1060&nums=46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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