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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약

상태와 변화2016. 10. 24. 14:53

술을 아주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져서 술자리에 있는 모든 술은 혼자 다 마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도 그 중 한 명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술 지시약'인 셈이다. 대개 유전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서 만년 비주류로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은 기분 낸다고 몰래 술 한잔도 마실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금방 알아채 버리기 때문이다.

화학 반응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지시약은 여러 종류가 있다. 화학 반응은 pH가 변하는 반응을 비롯하여, 침전이 생기는 반응, 산화 환원이 일어나는 반응, 복합물(complex)이 생성되는 반응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지시약을 이용하면 각 반응의 상태 혹은 완결 여부를 판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반응에 알맞은 지시약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 염기를 판별할 수 있는 산/염기 지시약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산 염기 지시약의 대명사, 리트머스

   

학창 시절에 마치 주문처럼 외웠던 리트머스 종이의 색 변화, '산파빨 알빨파'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산파빨, 알빨파'는 산성 용액을 파란색 리트머스 종이에 칠해보면 빨간색으로 변하며, 알카리 용액을 칠해보면 빨간색 리트머스 종이가 파란색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중학교 수준에서는 과학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변하는지 설명해주셨어도 온전한 이해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주문처럼 외우게 하셨던 것 아닐까?

리트머스는 산/염기를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잘 알려진 지시약이다. 리트머스는 공생식물의 하나인 리첸(lichen)에서 추출한 수용성 염료 혼합물을 말한다. 리트머스 종이(litmus paper)는 그 염료를 거름 종이(filter paper)에 흡수시켜서 말린 것이다. 산 혹은 염기인지 판별해보고 싶은 용액을 리트머스 종이에 칠해보면 용액의 pH에 따라 색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리트머스 시험지. 왼쪽이 염기성, 오른쪽이 산성이다.

   

리트머스 시험이라는 말은 과학 외에서도 흔히 쓰인다. 청문회 자리에 참석하는 고위 공직자 후보들도 리트머스 시험(litmus test)의 대상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판별대상이 사람이기에 색 변화가 화학물질처럼 분명하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질문(염료)에 대한 답(색 변화)을 듣다 보면 그 사람 고유의 색도 파악이 불가능하지는 않은가 보다.

자연의 지시약 안토시아닌

리트머스의 색을 나타내 주는 발색단(chromophore) 분자의 구조는 안토시아닌과 유사한 점이 많다. 리트머스 혹은 안토시아닌은 벤젠고리와 유사 벤젠고리 구조들이 연결된 형태를 하고 있다. 유사 벤젠고리는 벤젠을 구성하는 탄소의 한두 개가 산소나 질소로 치환된 화합물을 말한다. 또한 벤젠고리의 수소 자리에 수산화 기(OH-), 카르복실 기(COO-), 카보닐 기(CO-), 설포닐 기(SO3-)와 같은 각종 작용기(functional group)가 결합된 구조를 하고 있어서 조금 복잡하게 보인다. 많은 발색단 화합물들은 이중결합과 단일결합이 교대로 연결된, 소위 말하는 공액(conjugated) 화합물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발색단 분자의 다양한 작용기와 용액내의 수소이온(H+) 혹은 수산화이온(OH-)과 반응하면 새로운 고리 화합물이 형성되기도 한다. 또한 분자 내에 존재하고 있는 이중결합과 단일결합이 교대로 연결된 사슬의 길이가 변한다. 어느 한 종류의 변화만 일어나도 발색단 분자가 흡수하는 빛의 파장이 바뀐다. 따라서 지시약이 흡수하는 파장에 해당하는 색의 보색(complementary color)을 관찰하여 용액 내의 pH 변화를 알아채는 것이다.

안토시아닌(anthocyanin)은 각종 색을 띠는 과일이나 채소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화학물질이다. 예를 들어서 포도주에 포함된 안토시아닌은 산성에서 빨강색을, 염기성에서는 파란색을 띤다. 붉은색 포도주는 그 자체가 약산성 혹은 중성의 pH를 유지한다고 그 색으로 우리에게 지시해주고 있다. 안토시아닌은 물에 녹는 색소이며, pH에 따라 청색, 보라, 빨강 색깔을 띨 수 있는 분자이다. 식물의 색깔은 대부분이 안토시아닌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식물의 잎, 줄기, 뿌리는 물론 꽃, 열매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안토시아닌이 검출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안토시아닌만 해도 500개 이상이 된다. 최근에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물질로 알려져 인기가 높아만 간다. 사람 몸에 좋다는 음식을 추천할 때 가급적 진한 색을 띤 과일이나 채소를 권하는 이유에는 항산화 물질인, 안토시아닌이 많이 포함되었다는 것도 들어간다.

염기성에서 붉게 변하는 페놀프탈레인

   

페놀프탈레인 용액, 염기성에서 선명한 붉은 색으로 바뀐다.

   

흔히 알려진 또다른 산 염기 지시약은, 아마도 리트머스보다 색 변화가 분명한 페놀프탈레인 용액일 것이다. 산성용액에서는 페놀프탈레인은 무색이며 염기성용액에서는 붉은색을 띤다. 즉 색을 띠지 않는 산성용액에 페놀프탈렌인 몇 방울을 가해도 용액의 색은 변화가 없다. 그러나 계속해서 염기를 첨가하면 어느 순간에는 용액 전체가 페놀프탈레인 특유의 붉은색으로 변한다. 즉 용액의 pH가 염기성으로 변했다는 사실은 페놀트탈레인의 색 변화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페놀프탈레인 용액으로 시험 용액이 산성인지 염기성인지 판별할 수 있다. 페놀프탈레인은 설사를 유발하는 약리 작용이 있어서 한때는 변비 치료약으로 사용이 되었지만, 지금은 발암물질 의심 물질로 분류되어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페놀프탈레인의 화학구조 역시 한 개의 탄소에 곁가지가 달린 3개의 벤젠고리가 연결되어 있어서 전형적인 발색단 모습을 하고 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양배추로 만든 지시약 실험

집에서도 지시약을 만들어 간단하게 산 염기를 판별할 수 있다. 적색 혹은 보라색을 띤 양배추에는 플라빈(flavin)이라는 색소가 들어 있다. 플라빈은 벤젠고리 1개와 유사 벤젠고리 2개가 서로 융합된 구조를 지닌 유기 염료로 발색단 분자이다. 보라색 양배추를 곱게 갈아 냄비에 넣고 물로 끓이면 색소가 우러난다. 물을 식히고 건더기를 걸러낸 것이 바로 사용 가능한 지시약 용액이다. 지시약 용액을 유리컵에 조금 붓고 나서 식초를 넣으면 용액의 색이 빨간(핑크)색으로 변한다. 색 변화를 더 확실하게 보려면 유리컵 밑에 흰 종이를 깔면 좋다. 또 다른 유리컵에 지시약 용액을 넣고 암모니아수를 부으면 초록색으로 변한다. 초록색 용액에 빨대를 담그고 호흡을 하면서 내쉬는 숨을 용액으로 불어 넣으면 잠시 뒤에 초록색이 파란색으로 변한다. 그것은 날숨에 포함된 이산화탄소가 녹아서 탄산이 형성되면 용액이 중성 내지는 약산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 용액에 식초를 몇 방울 더 떨어뜨려 보면 빨간색 용액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초등, 중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부엌에서 이런 간단한 실험을 같이 해보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편으론 생활에 사용하는 물질을 통해서 자녀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고, 또 다른 면은 같이 놀이를 하면서 대화를 통한 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당연히 화학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집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라도 눈이나 피부에 닿지 않게 조심을 해야 한다.

종말점 검출에 필요한 지시약

산/염기 적정(titration)을 할 때 산 혹은 염기의 양이 정확히 같아지는 점, 종말점을 알아낼 때에도 지시약을 사용한다. 흔히 약산을 강염기로 적정하는 경우에는 페놀프탈레인, 티몰블루등을 이용한다. 만약에 강산을 강염기로 적정한다면 pH 가 7 근처에서 민감하게 변색이 되는 브로모티몰블루, 페놀레드등을 사용한다. 약염기를 강산으로 적정하는 경우에는 메틸오렌지 콩고레드등을 사용한다. 각 경우마다 다른 지시약을 사용하는 이유는 종말점에 도달한 용액의 pH에 맞추어 색 변화가 일어나는 지시약을 선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시약에는 종류가 많다. 강물의 오염 등을 측정하기 위해 용존산소량을 파악할 때도 지시약을 사용한다.

   

만능 지시약

실험실에서 용액의 pH를 간단하게 파악하는 수단으로 흔히 만능지시약 종이를 사용한다. 만능지시약 종이는 발색단을 포함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지시약 혼합물을 종이에 흡수시켜 말린 것이다. 지시약 혼합물은 시험 용액의 pH에 따라서 발색되는 분자의 색 변화가 명확하게 구별이 될 수 있는 지시약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시약 종이를 조금 잘라서 시험 용액에 적시면 색 변화가 일어난다. 지시약 종이를 보관하는 도구에 특정한 색은 pH 얼마에 해당한다고 알려주는 표가 붙어 있어서 누구라도 쉽게 시험 용액의 pH를 알아 볼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최근에는 pH 1 단위의 변화도 구별할 수 있는 보다 정밀한 만능지시약 종이도 있다. 그렇지만 만능지시약 종이의 성능은 색 변화를 구별해 낼 수 있는 우리 눈의 정확도에 의존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정확도가 문제가 크게 되지 않는다면 만능지시약 종이는 pH를 파악하는데 아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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