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O care

혼돈과 질서

상태와 변화2016. 10. 24. 16:08

일리아 프리고진 [질서와 혼돈]

   

1. 작가 소개

일리아 프리고진(I. Prigogine) 191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22년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갔다가 나치의 대두를 보고 브뤼셀로 옳긴 벨기에의 과학자이다. 그는 브뤼셀 대학을 졸업 후 1941년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1년부터 이 대학에 교수로 있으며, 물리학화학 연구소장 및 텍사스 대학 통계열역학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비가역과정(非可逆過程)의 열역학을 체계화하고, 산일구조(散逸構造)의 개념을 제출하여 거기서부터 요동을 통한 질서형성을 연구하는 등, 비평형개방계의 물리학화학을 일관적으로 추구하였다. 비평형열역학의 기본을 이루는 산일함수를 체계화한 업적으로 197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2. 책의 소개

우리들의 세계 개념은 우리가 자각하고 있는 것보다 물리학으로부터 매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뉴턴과 그의 역학의 계승자들은 우주를 예측할 수 있는 일정한 규칙에 따르는 시계와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한 인식에 따르면 정치, 경계 혹은 심리학마저도 일정한 법칙의 지배하에 있다. 즉 우리를 통치하는 자를 위대한 시계 직공처럼 인정하는 것이 된다.

일리아 프리고진은 우주의 기계론적 견해에 과학성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뉴턴 이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학교에서 아직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에야말로 확률에 바탕을 둔 현대 물리학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질서가 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본질적으로 불확정한 혼돈에 불과하다. 현세는 시계나 시계공과 같은 것이 없다. 세계는 우발적이며, 혼돈스럽고 예측 불가능이다. 그래서 그는 물리학도 인문과학처럼 우연의 총화(總和)가 된다고 말한다.

   

3. 읽어보기

(1)우주는 이젠 시계가 아니라 혼돈이다

학교에서 태연히 가르치고 있는, 고전적 모델에 의하면, 우주의 법칙은 단순하고 대칭성(對稱性)을 가지고 있으며 결정론적이다. 그러고 가역성(可逆性)이 있다. 시계는, 예측할 수 있는 일정한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뜻에서, 우주의 상징적인 표현이 된다. 이 도시에서는 물질이 법칙에 따르지만, 인간은 그와 반대로 자유이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이원론(二元論)적 입장이며, 서양 철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역사나 심리학과 같은 인문 과학과 정밀 과학을, 우리들의 문화가 구분하게 되었다. 전자(前者)에서는 시간과 사상(事象)이 본질적인 역할을 하고, 후자에서는 법칙이 시간을 초월한다.

1920년대의 초기에 과학계는 이 도식이 양자 역학에 의해 변혁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전자의 영역에서 고전물리학이 효력을 얻지 못하고, 우리들은 불확실한 세계로 들어간 셈이다.

물질의 구조는 결정론적 법칙이 아니라 확률 모델에 의해서 확정되게 되었다. 처음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들이 신봉하는 결정론의 우주에 섭동(攝動)이 인정되었을 때, 그것은 인간의 측정에 의해 생겼다는 해석이 압도적이었다. 불안정을 일으킨 것은 관측자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20세기 말엽의 현재, 물질은 불완전하며, 불변하다고 믿어 왔던 우주에도 역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물리학의 세계는 시계가 아니라, 예상할 수 없는 혼돈이다!>고 그는 주장한다.

원인과 결과의 필연적인 연쇄(連鎖)를 기본으로 하는 결정론적인 학설은 모두, 확률 계산으로 차츰 자리바꿈이 된다. 분명히 약 5백만 년 후의 지구의 위치를(뉴턴 학파의 고전적 도식을 바탕으로) 예언할 수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안정된 주기운동이 예외에 속한다는 것도 판명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동력학(動力學) 체계는 불안정하다. 프리고진은 눈에 띄는 단순한 한 예로서 기상학을 들었다.

   

(2) 나비()의 효과는 자연을 예측 불허로 만든다

프리고진은 의문을 던진다. 지난 1세기 동안 혜성(慧星)의 통과는 예측할 수 있는데, 어째서 다음주의 기후를 예측할 수 없느냐고.

기상관(氣象官)은 완전한 예측을 세워도 기껏해야 4일 미만의 예보밖에 할 수 없다. 개량된 관측기기를 손앞에 둔다면, 1주일 후나 1개월 후의 일기예보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세론(世論)은 믿고 있다. 그것은 잘못이다. 기후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능이다. 불확실한 사상(事象)을 총계한 결과인 것이다. 결국 이것도 불안정한 동력학(動力學) 체계에 속한다. 그 의미는 지구의 어느 한 곳에서 극히 작은 변동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나비의 효과"라고 부른다. 북경에서 나비의 날개짓으로 가벼운 미풍이 생기면 그 바람이 전해져서, 캘리포니아에 태풍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프리고진의 학설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기본적인 예로, 화폐 이야기가 있다. 동전을 던져서 안 쪽이냐 바깥 쪽이냐를 맞추는 게임을 해 보면, 동전이 떨어졌을 때에 나오는 면은 안이나 바깥이나 같은 빈도이다. 가령 컴퓨터를 사용해서 동전 운동의 전 단계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3)프리고진은 '계산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동전은 반드시 불확실한 영역, 면이 바꿔는 영역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에 불안정한 동력화 체계에서는 '안'이 나올 것 같은 최초의 조건과 '바깥'이 나을 것 같은 최초의 조건이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성서에 기록된 역사의 유명한 예를 빌려 보자. 요셉이 고대 이집트 왕에게 예언한 일곱 마리의 살찐 암소 뒤에, 말라빠진 일곱 마리 염소가 나타나는 이야기이다(구약성서 창세기 제41). 나일강의 증수(增水)는 수천 년 전부터 측량되어 왔다.

컴퓨터로 분석하면 그 증수는 예측불능이며, 당연하게도 혼돈하게 되어 있다. 증권거래소의 현상도 '나비의 효과'와 동질이다. 예를 들어 도쿄(東京)의 증권 거래소의 작은 증권 거래량이 뉴욕에서의 전면적인 대폭락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이 대폭락도 역시 당연하게도 예측 불능이다.

이러한 에피소드에서 보면 (이 밖에도 설득력있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지만 프리고진은 삼가고 있다) 결정론적인 세계관은 끊어져 간다. 요컨대, 우연성은 물리학적 현실의 불가능한 일부이다. 물질에는 생명과 같이 사상(事象)에 좌우되는 성질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믿고 있던 것과는 반대로 프리고진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고 생각한다

   

(4)질서는 어떻게 혼돈에서 생긴 것일까

결정론적 법칙에 대신하여 우연성이 편재(遍在)하는 데 관해서 학자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프리고진은 경탄스럽다고 대답한다. 혼돈이, 역시 질서 있는 구조로 귀착되는 데에 학자는 놀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미 가장 놀랄 만한 일은 이 대우주 속에서 우리들이 얼마만큼의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혼돈에서 태어난 질서라는 프리고진의 표현은 근대과학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고, 모든 전문 분야에 통용된다고 한다.

그는 특히 물리화학 분야에서, 이른바 산일구조(散逸構造)를 발견했다. 산일구조는 결정과 같은 폐쇄적인 평형계의 질서와는 반대로, 외계와 에너지나 물질을 끊임없이 교환하는 개방계에서는 정적(靜的)인 평형 상태를 얻지 못하고, 동적인 질서를 갖는 정상상태(定常狀態) 혹은 시간적으로 지속되는 진동상태(振動狀態)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거시적(巨視的)인 질서 구조를 가리킨다. 화학적인 비평형 상태는 반드시 무질서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완전히 질서 잡힌 조직이나 구조를 자연 발생적으로 출현시킨다. 이 구조를 산일(散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구조가 앞 조직과 대체되는 데 있어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 산일하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적인 물리학이 질서와 평형구조를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이 개념의 모델은 결정이다. 반대로 비평형 상태를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비평형 상태가 질서나 무질서에 모두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명히 추상적이지만 본질적인 사항이다. 왜냐하면, 우리 우주 전체는 혼돈, 질서, 혼돈, 질서라는 모델에 바탕을 두고 기능하고 있으며, 그 단계마다 대량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5) 일반 원리로서의 혼돈

그런데, 물리화학 반응의 차원에서는 그것이 진실이고 검증할 수도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과연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인가? 비평형 구조는 보편적이고 새로운 원리인가, 아니면 단순한 음유(陰喩)인가? 최초의 혼돈에서 태어난(150억년 전의 폭발에 의함) 우리 우주는 은하와 혹성으로 구성되었다. 자연 선택의 우발성(偶發性)에서 생긴 생명마저도 점점 조직화되고, 복잡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경제도 이 모델에 맞추어서 기능하고 있다고 한다. 종합되지 않은 별개의 활동의 모임에서 사회질서와 경제의 진보가 나타난다. 나라들의 운명도 파란을 겪으면서, 대규모적인 변동(군중의 움직임변동)을 거쳐, 언젠가는 새로운 사회 질서에 이르고 그 사회는 거듭 에너지 자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

'혼돈'의 사회적 분석과 정치가의 일반적 연설과의 사이에 큰 틈이 있는 데에 대해서 프리고진은 주의를 촉구한다.

정부의 말은 정말로 상황을 충분히 장악하고 있으며, 올바른 레버를 누르기만 하면 기대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들린다. 이와 같은 정치 속에다 판단을 가두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종합적으로 뒤졌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시계처럼 예측 가능한 우주라는 관점은 '프리고진의 모델'과는 항상 상반된다.

그 실례는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다. 사라예보의 테러행위에서 발발한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은 '나비 효과'의 가장 적절한 예증(例證)이 아닌가?

좀더 가까이로는 1987 10월의 주식 대폭락의 관한 뉴턴학파의 결정론적 설명을 그는 비웃는다. 전문가의 말을 빌린다면, 시세의 저락(低落)은 달러 값이 떨어진 데서 발생했다. 달러 값의 하락은 미국의 무역 적자의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비 효과'의 하나이다. 딴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폭락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을 예측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금융 전문가도 있었는데 그건 단순히 우연히 적중한 데 불과하다.

   

4. 생각하기

프리고진에게는, 질서가 혼돈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이다. 그러나 과학 모델을 이와 같은 사회적 이론으로 이행(移行)시키려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보자.

   

원본 위치 <http://cafe354.daum.net/_c21_/bbs_read?grpid=1BVWP&mgrpid=&fldid=JT1C&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0i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44&listnum=20>

'상태와 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체상수  (0) 2016.10.26
칼 포퍼  (0) 2016.10.24
원자론  (0) 2016.10.24
슈레딩거의 고양이  (0) 2016.10.24
toluene  (0) 2016.10.24

원자론

상태와 변화2016. 10. 24. 16:08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는 양성자와 중성자이다. 중성자

1932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원자핵이

양성자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었다. 원자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원자핵 속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수이다.

양성자 하나로 이루어진 원자핵을 가지고 있는 원자는

수소이다. 산소 원자핵은 8개의 양성자를 가지고 있고

탄소 원자핵은 6개의 양성자를 가지고 있다. 양성자의

수를 원자번호라고 한다. 보통의 원자는 양성자와 같은

수의 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전하나 음전하를 띤

이온은 전자의 수가 양성자의 수보다 약간 많거나 적다.

   

만물을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알맹이인 원자가 남는다는 원자론은 1808년 영국의 돌턴(John Dalton, 1766~1844)에 의해「화학의 신체계」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제안되었다. 그러나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원자론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소와 산소가 화합하여 물이 된다는 것은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수소 원자 몇 개와 산소 원자 몇 개가 결합하여

물 분자 하나를 만드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원자들의 수를 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한

분자의 조성식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따라서 원자론이 제안된 후에도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원자론을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화학 반응에 참여하는 원자의 수를 세는 방법을 제안한 사람은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 1776~1856)였다. 아보가드로는 1811년에 같은 온도 같은 압력 하에서 같은 부피 속에는 원자나 분자의 크기와 관계없이

같은 수의 알갱이가 들어 있다는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제안했다.

만약 이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부피의 비가 바로 알갱이 수의 비가 되어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알갱이 수의 비를 알 수

있고 이것을 토대로 분자의 조성을 정확히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 1776~1856)

   

그러나 화학자들은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같은 부피 속에 들어 있는 큰 분자나 작은 원자의 수가 같다는 아보가드로의

가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온도와 압력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이 가설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체의 부피는 기체 분자나

원자가 실제로 차지하는 부피가 아니라 그것이 활동하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체 분자나 원자 그 자체가 차지하는 부피는 전체 부피에

비하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따라서 분자나 원자의 크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도는 기체 분자나 원자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크기를 나타낸다. 따라서 같은 온도에서는 모든 원자나 분자가

같은 에너지를 가지게 되고, 벽에 부딪혔을 때 벽에 작용하는 평균 힘이

같다. 그러므로 같은 온도에서 같은 압력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같은 부피

속에는 같은 수의 알갱이가 들어 있어야 한다. 즉, 같은 온도, 같은 압력,

같은 부피 속에는 같은 수의 알갱이가 들어있는 것이다.

   

열과, 온도 그리고 압력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19세기 초의 화학자들을 설득시켜 화학자들로 하여금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원자설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칸니차로(Stanislao

Cannizzaro, 1826~1910)였다. 1860년 9월3일에 카를스루에(Karlsruhe)에서 열렸던 최초의 국제 화학회의에서 제노바

대학의 교수였던 칸니차로는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받아들이도록 화학자들을 설득했다. 칸니차로의 노력으로 화학자들은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화학을 크게 발전시켜 나갔다.

   

마하(Emst Mach, 1838~1916)

   

그러나 20세기가 되어서도 물리학자들 중에는 원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우리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없는 것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확실하지도 않은 원자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도 여러 가지

물리적 성질을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의 교수였던 마하(Ernst Mach, 1838~1916)는

그런 사람들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1895년부터 1901년까지

빈 대학의 과학철학사 주임교수직을 맡았던 마하는 음향학, 전기학,

유체역학, 역학, 광학 그리고 열역학 등의 분야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으며, 초음파 원리의 기초를 닦기도 했다.

마하는 소리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소닉 붐」

이라는 효과를 낸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이기도 하다. 흔히 전투기

등의 아주 빠른 비행기의 속도를 나타낼 때 소리의 속도를 1로 하여

나타내는 것을 마하수라고 하는데 이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단위이다.

마하는 극단적인 실증주의의 지지자였고, 자신의 신념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연과학에서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할 수 없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려고 하였고,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개념을

적극 반대했다. 그는 과학은 관측된 현상을 기초로 일반화하는 귀납적인 바탕 위에서만 과학이 형성될 수 있다는 확신하고

있었다. 마하는 죽을 때까지 세상이 맨눈으로 절대로 볼 수 없는 원자와 같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분자나 원자를 통계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정립한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 1844~1906)은 마하를

정면으로 반대했다. 원자의 존재를 두고 벌어진 두 사람 사이의 적대감은 1895년에 볼츠만이 빈 대학의 이론물리학 주임

교수직을 사직하고 라이프치히로 옮겨갈 정도였다. 1901년에 마하가 오스트리아 국회의원에 지명되어 철학과 주임교수

자리를 사직하자 볼츠만은 빈으로 돌아와 마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볼츠만은 물리학 분야에 확률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었다. 볼츠만은 고립된 물리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항상 최대의 엔트로피 상태를 향해 변해간다는 열역학 제2법칙은 통계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확률적으로 해석할 때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마하와 볼츠만은 원자가 물리적 실체인가 아니면 물리학자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가상적인 존재인가 하는 것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마하는 물러설 줄 모르는 용감한 투사였지만 볼츠만은 그렇지 않았다. 볼츠만은 항상 수비하는 입장이었다. 1897년에 빈에서 열렸던 한 학술회의에서 볼츠만의 발표가 끝난 후 마하가 일어나서 큰 소리로 "나는 원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을 때도 그는 효과적으로 마하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마하와의 수 년 동안에 걸친 논쟁에 지친 볼츠만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1906년 9월 6일 트리티스 근처에 있는 두인노 만에서 부인과 딸이 수영을 하고 있는 동안 볼츠만은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원자의 존재를 바탕으로 통계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성립시켰던 볼츠만의 일생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버렸다.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 1844~1906)

   

그러나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논문이 그가 죽기 1년 전인 1905년, 스위스 베른에 있는 특허사무소

서기에 의해 발표되어 있었다. 그 특허사무소 서기는 아인슈타인이었다. 그가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던 것이다. 액체 위에 떠있는 미세한 입자들의 무작위한 운동인 브라운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바탕으로 정교한 이론을 전개했고, 그 결과는 실험을 통해 확인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볼츠만을 구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아인슈타인은 아직 물리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고, 그의 논문에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볼츠만이 죽은 후 원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1911년에는 러더퍼드가 원자핵을 발견했고, 원자보다 작은 수많은 입자들도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원자보다 훨씬 작은 쿼크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 현대 과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장비로는 원자를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물체의 표면을 이루는 원자와 탐침 사이에 흐르는 작은 전류를 측정하여 표면 상태를 알아보는 주사형 터널 현미경(STM)이나 표면 원자와 탐침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측정하여 표면 상태를 알아보는 원자력 현미경(AFM)을 이용하면 원자의 배열상태를 직접 보는 것이 가능하다. 직접 관측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티던 마하가 STM 혹은 AFM으로 찍은 원자 배열 사진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할까? 그런 마하의 표정을 바라보는 볼츠만의 표정은 또 어떨까?

   

신소재 그래핀(graphene)의 사진. 개개의 탄소 원자(주황색)끼리 결합한

6각 격자 구조를 볼 수 있다. <출처: LBL>

   

원본 위치 <http://cafe354.daum.net/_c21_/bbs_read?grpid=1BVWP&mgrpid=&fldid=JT1C&content=P&contentval=0000ozzzzzzzzzzzzzzzzzzzzzzzz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listnum=20>

'상태와 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 포퍼  (0) 2016.10.24
혼돈과 질서  (0) 2016.10.24
슈레딩거의 고양이  (0) 2016.10.24
toluene  (0) 2016.10.24
MEK  (0) 2016.10.24

듀안 마이클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단 세 컷으로 양자역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고양이의 표정이 재밌습니다.

다음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퍼온 슈뢰딩거의 고양이 설명입니다.

슈뢰딩거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로 양자역학을 서술하는 네가지 방법 중 가장 기초적이고 최초의 방정식을 고안해 낸 사람이다. 슈뢰딩거는 말년에 과학철학을 공부했는데 그가 내세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만약 양자법칙이 거시세계에까지 확장된다면 어떻게 될까를 보여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고양이가 밀폐된 상자 안에 갇혀 있다. 상자 안에는 1시간에 2분의 1 확률로 1개 분해되는 알파입자 가속기가 있고 청산가리 통이 들어 있다. 만약 알파입자가 방출되어 청산가리 통의 센서가 감지하면 청산가리 통은 깨지고 고양이는 죽고 만다. 1시간 후 과연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알파입자는 미시세계의 것이고 양자역학으로 서술된다. 그것이 거시세계의 고양이를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각 물리학적 입장에 따라 고양이가 죽었을까 살았을까에 대한 답변은 다르다. 고전역학자들은 실재론자들이며 우리가 그것을 확인하든 안 하든 고양이는 죽었거나 안 죽었거나이다.

   

1시간 후의 일은 어떻게든 결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관찰과 무관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양자론자들은 관측에 지배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이고 우리가 그것을 열어봤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즉, 그것의 결과는 관측에 의존한다. 하나는 결정론적인 사고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비결정론적인 사고를 취하고 있다. 양자역학에서 관측행위는 결과값에 항상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가능세계론과 통계적 입장이 있다. 가능세계론은 기본적으로 확률에 의한 세계관을 받아들인다. 그들에 의하면 상자를 여는 순간 세계는 고양이가 죽은 세계와 죽지 않은 세계의 두 갈래로 나뉜다. 통계적 입장 역시 확률론을 받아들인다. 만약 어떤 이가 여러번 이 실험을 반복한다면 어떤 통계적인 값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양이가 죽을 확률이라는 것이다.

   

이 논쟁은 양자역학의 기초를 다져 오늘날 톱쿼크와 같은 물질 기본단위 연구의 길을 트는 동시에 철학사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슈뢰딩거, 막스 보른, 오토 한 등 양자역학을 설명한 독일 괴팅겐대학교 교수들은 통근기차 속 토론에서 이런 복잡하고 심오한 이론체계를 확립했다고 한다.

   

원본 위치 <http://cafe354.daum.net/_c21_/bbs_read?grpid=1BVWP&mgrpid=&fldid=JT1C&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0n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49&listnum=20>

'상태와 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돈과 질서  (0) 2016.10.24
원자론  (0) 2016.10.24
toluene  (0) 2016.10.24
MEK  (0) 2016.10.24
menthol  (0) 2016.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