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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론

상태와 변화2016.10.24 16:08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는 양성자와 중성자이다. 중성자

1932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원자핵이

양성자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었다. 원자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원자핵 속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수이다.

양성자 하나로 이루어진 원자핵을 가지고 있는 원자는

수소이다. 산소 원자핵은 8개의 양성자를 가지고 있고

탄소 원자핵은 6개의 양성자를 가지고 있다. 양성자의

수를 원자번호라고 한다. 보통의 원자는 양성자와 같은

수의 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전하나 음전하를 띤

이온은 전자의 수가 양성자의 수보다 약간 많거나 적다.

   

만물을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알맹이인 원자가 남는다는 원자론은 1808년 영국의 돌턴(John Dalton, 1766~1844)에 의해「화학의 신체계」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제안되었다. 그러나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원자론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소와 산소가 화합하여 물이 된다는 것은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수소 원자 몇 개와 산소 원자 몇 개가 결합하여

물 분자 하나를 만드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원자들의 수를 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한

분자의 조성식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따라서 원자론이 제안된 후에도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원자론을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화학 반응에 참여하는 원자의 수를 세는 방법을 제안한 사람은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 1776~1856)였다. 아보가드로는 1811년에 같은 온도 같은 압력 하에서 같은 부피 속에는 원자나 분자의 크기와 관계없이

같은 수의 알갱이가 들어 있다는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제안했다.

만약 이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부피의 비가 바로 알갱이 수의 비가 되어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알갱이 수의 비를 알 수

있고 이것을 토대로 분자의 조성을 정확히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 1776~1856)

   

그러나 화학자들은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같은 부피 속에 들어 있는 큰 분자나 작은 원자의 수가 같다는 아보가드로의

가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온도와 압력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이 가설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체의 부피는 기체 분자나

원자가 실제로 차지하는 부피가 아니라 그것이 활동하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체 분자나 원자 그 자체가 차지하는 부피는 전체 부피에

비하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따라서 분자나 원자의 크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도는 기체 분자나 원자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크기를 나타낸다. 따라서 같은 온도에서는 모든 원자나 분자가

같은 에너지를 가지게 되고, 벽에 부딪혔을 때 벽에 작용하는 평균 힘이

같다. 그러므로 같은 온도에서 같은 압력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같은 부피

속에는 같은 수의 알갱이가 들어 있어야 한다. 즉, 같은 온도, 같은 압력,

같은 부피 속에는 같은 수의 알갱이가 들어있는 것이다.

   

열과, 온도 그리고 압력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19세기 초의 화학자들을 설득시켜 화학자들로 하여금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원자설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칸니차로(Stanislao

Cannizzaro, 1826~1910)였다. 1860년 9월3일에 카를스루에(Karlsruhe)에서 열렸던 최초의 국제 화학회의에서 제노바

대학의 교수였던 칸니차로는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받아들이도록 화학자들을 설득했다. 칸니차로의 노력으로 화학자들은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화학을 크게 발전시켜 나갔다.

   

마하(Emst Mach, 1838~1916)

   

그러나 20세기가 되어서도 물리학자들 중에는 원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우리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없는 것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확실하지도 않은 원자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도 여러 가지

물리적 성질을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의 교수였던 마하(Ernst Mach, 1838~1916)는

그런 사람들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1895년부터 1901년까지

빈 대학의 과학철학사 주임교수직을 맡았던 마하는 음향학, 전기학,

유체역학, 역학, 광학 그리고 열역학 등의 분야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으며, 초음파 원리의 기초를 닦기도 했다.

마하는 소리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소닉 붐」

이라는 효과를 낸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이기도 하다. 흔히 전투기

등의 아주 빠른 비행기의 속도를 나타낼 때 소리의 속도를 1로 하여

나타내는 것을 마하수라고 하는데 이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단위이다.

마하는 극단적인 실증주의의 지지자였고, 자신의 신념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연과학에서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할 수 없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려고 하였고,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개념을

적극 반대했다. 그는 과학은 관측된 현상을 기초로 일반화하는 귀납적인 바탕 위에서만 과학이 형성될 수 있다는 확신하고

있었다. 마하는 죽을 때까지 세상이 맨눈으로 절대로 볼 수 없는 원자와 같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분자나 원자를 통계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정립한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 1844~1906)은 마하를

정면으로 반대했다. 원자의 존재를 두고 벌어진 두 사람 사이의 적대감은 1895년에 볼츠만이 빈 대학의 이론물리학 주임

교수직을 사직하고 라이프치히로 옮겨갈 정도였다. 1901년에 마하가 오스트리아 국회의원에 지명되어 철학과 주임교수

자리를 사직하자 볼츠만은 빈으로 돌아와 마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볼츠만은 물리학 분야에 확률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었다. 볼츠만은 고립된 물리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항상 최대의 엔트로피 상태를 향해 변해간다는 열역학 제2법칙은 통계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확률적으로 해석할 때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마하와 볼츠만은 원자가 물리적 실체인가 아니면 물리학자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가상적인 존재인가 하는 것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마하는 물러설 줄 모르는 용감한 투사였지만 볼츠만은 그렇지 않았다. 볼츠만은 항상 수비하는 입장이었다. 1897년에 빈에서 열렸던 한 학술회의에서 볼츠만의 발표가 끝난 후 마하가 일어나서 큰 소리로 "나는 원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을 때도 그는 효과적으로 마하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마하와의 수 년 동안에 걸친 논쟁에 지친 볼츠만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1906년 9월 6일 트리티스 근처에 있는 두인노 만에서 부인과 딸이 수영을 하고 있는 동안 볼츠만은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원자의 존재를 바탕으로 통계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성립시켰던 볼츠만의 일생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버렸다.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 1844~1906)

   

그러나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논문이 그가 죽기 1년 전인 1905년, 스위스 베른에 있는 특허사무소

서기에 의해 발표되어 있었다. 그 특허사무소 서기는 아인슈타인이었다. 그가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던 것이다. 액체 위에 떠있는 미세한 입자들의 무작위한 운동인 브라운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바탕으로 정교한 이론을 전개했고, 그 결과는 실험을 통해 확인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볼츠만을 구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아인슈타인은 아직 물리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고, 그의 논문에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볼츠만이 죽은 후 원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1911년에는 러더퍼드가 원자핵을 발견했고, 원자보다 작은 수많은 입자들도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원자보다 훨씬 작은 쿼크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 현대 과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장비로는 원자를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물체의 표면을 이루는 원자와 탐침 사이에 흐르는 작은 전류를 측정하여 표면 상태를 알아보는 주사형 터널 현미경(STM)이나 표면 원자와 탐침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측정하여 표면 상태를 알아보는 원자력 현미경(AFM)을 이용하면 원자의 배열상태를 직접 보는 것이 가능하다. 직접 관측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티던 마하가 STM 혹은 AFM으로 찍은 원자 배열 사진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할까? 그런 마하의 표정을 바라보는 볼츠만의 표정은 또 어떨까?

   

신소재 그래핀(graphene)의 사진. 개개의 탄소 원자(주황색)끼리 결합한

6각 격자 구조를 볼 수 있다. <출처: LBL>

   

원본 위치 <http://cafe354.daum.net/_c21_/bbs_read?grpid=1BVWP&mgrpid=&fldid=JT1C&content=P&contentval=0000ozzzzzzzzzzzzzzzzzzzzzzzz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listnum=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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